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내 인생에 나는 게을렀는가?

게으름이란 환경이나 주변사람들이 결정하게 내버려두는 생활방식을 감내하는 것
- 팀페리스(나는4시간만일한다 중)

우리 가족은 부지런하다. 나는 출근을 위해 5시 반에 일어난다. 아침에 운동도 하고 늦지않게 출근을 하려면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출근을 위해 4시에 일어나신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하신다고 했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다만, 시간약속에 늦는 일은 최대한 피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얼마전에 있던 외할아버지 생신에서 바뀌었다.

원래 친척들과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어렸을 땐 뭔지모를 자존심에 나이가 들어선 그게 관성이 되어서 질문에만 대답하는 정도로 이야기를 이어갔었는데 이번에 가족이 앉아 얘기를 하다보니 어머니, 이모, 외삼촌, 이모부,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나보다 늦게 일어나시는 분이 없었다. 5시 반에 일어나는 나보다도 먼저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시는 분이셨다.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께선 남에게 피해주지말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하셨다. 사람은 일을 해야하며 남에게 도움을 줄 지언정 받고 살지 말으라 하셨다. 그래서일까 어딜가서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하며 살았다. 일머리가 없으면 몸으로 때웠고 일머리가 생겼을 땐 일을 하고 일을 찾아했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나는 4시간만 일한다'에서 말하는 게으름이란 내가 아는 부지런함의 반대말이 아니다. 과연 나는 부지런한가?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반성이 되어서 혹은 찔려서 힘든게 아니라 잘 모르겠어서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난 한국의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했다. 30살의 7월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전엔 어떻게 살았는가? 대학을 다니다가 간 군대에서 전역 후 대학을 돌아가지 않아 제적. 그 이유는 내 인생이 너무 뻔해서였다. 당시 사범대를 다녔는데 대학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임용을 보고 선생님이 되면 그렇게 50대 60대를 거쳐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기억 속에 흐릿한 그냥 착한 애 혹은 찐따였던 애가 고군분투 끝에 선생님이 되어 학생에게 울림을 줄 수 없는 그저 그런 선생님이 되어 흐릿한 인생을 사는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경험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의 깊은 마음을 가진 선생님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해외를 나갔다.

나가는 것까진 좋았는데 부지런하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은 했지만 미래를 설계하고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해외에 나간 변하지 않은 나였다. 어느덧 쉬는 날엔 혼자 게임이나 하는 그런 외국인이 되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일련의 충격이었다. 친하지 않았던 친구의 독설과 당시 여자친구에게서 실망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큰 상처를 받았다. 난 그 상황이 직업이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골프장 캐디로 일했다. 돈을 많이 번다는 광고글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년단위 목표를 정하고 감내하는 방식으로 살았던 것 같다.

1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돈을 모았다. 잘 못했지만 열심히 살았다. 친구를 사귀고 현재까지 내 생에 가장 많은 월급을 캐디를 하며 벌었다. 현금이 주는 마력은 상당했다. 일이 몸에 적응이 되어가며 몇년 더 하면 1억은 모을 것 같았다. 이렇게 큰 돈을 내가 당장 어떤 직장을 가도 못 모을 것 같았다. 그래도 원래 계획대로 해외에 나가 요트메이커가 되기 위한 유학을 가려했지만 학비는 내가 1년간 모은 돈으로는 반도 못모았고 학비를 모았다 하더라도 생활비가 없어 유학은 불가능 했다. 눈을 낮춰 목수가 되려했다. 열심히 해서 나중에 목수로 사업체를 차리려 했다. 그리고 해외로, 여자친구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운이 좋게 코로나가 터지기 몇달 전 일을 하고 있어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그냥 살았다. 가정주부처럼 집에서 요리하고 산책하며 살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대부분이 사람들보다 다양한 알바를 해왔지만 커리어의 연속성이 없었다. 아직은 20대 였지만 곧 서른이 될 때였고 더 늦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가 한국에서 개발자 붐이 이르던 때였다. 어딜가나 부트캠프 광고가 보이던 나는 한국에 없었지만 유튜브에 종종 광고를 보곤했다.

그렇게 지금은 개발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게을렀는가? 내가 좀 더 부지런했다면, 이렇게 돌고 돌아 일을 시작했을까? 시간은 많이 지체되었지만 내 인생 결국 내가 설계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충분히 부지런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게으름과 부지런함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물며 살아온 것 같다.

단순히 일찍 일어나는 것이 부지런 한 것이라면 난 부지런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 인생을 환경이나 남이 결정하지 않게 노력하며 부지런했냐고 하면 자신있게 부지런했다고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젠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오늘부터 부지런 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련의 경험을 통해 그 길은 장소를 바꾼다고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당신은 부지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